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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방
고조선, 우리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역사공방 한국사 연대기 8편 · 고조선 편 마지막 이야기고조선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로 이야기됩니다. 그러나 고조선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같은 정도로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단군의 건국 전승과 비파형 동검, 부왕·준왕과 위만의 집권, 우거왕의 마지막 전쟁, 그리고 왕검성의 위치까지. 역사공방은 앞선 일곱 편에서 고조선을 둘러싼 기록과 고고학 자료를 살펴봤습니다.마지막 편에서는 두 장의 지도를 함께 펼쳐 보려 합니다. 고조선 멸망 전후의 정치적 질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고조선을 더 넓은 동북아시아 역사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1. 단군의 이야기는 역사일까, 전승일까?『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왕검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고조선의 시작..
역사공방 | 한국사 연대기 7편일제는 고조선의 역사를 어떻게 해석했을까?단군 전승, 부왕과 준왕, 한사군의 역사. 식민지기 학자들의 실제 주장과 기록을 비교하다.일본은 고조선의 역사를 어떻게 왜곡했을까? 단군을 전설이라고 불렀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가 무엇을 주장했고 어떤 사료를 근거로 삼았는지 따져봐야 한다.이번 글에서는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단군 연구, 부왕과 준왕의 왕명 해석, 조선총독부의 역사 편찬, 평양 일대 낙랑 유적에 관한 연구를 각각 살펴본다. 식민 통치의 정치적 목적과 사료 자체의 역사적 가치는 구별해서 읽는다.1. 일제는 왜 고조선의 역사를 연구했을까?시라토리 구라키치는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기 전인 1894년부터 단군 전승을 연구했다. 따라서 일본인 학자들의 고조선 연구를 모..
역사공방 · 한국사 연대기 6편『환단고기』는 진짜 고대 역사서일까?환인 7대, 환웅 18대, 단군 47대. 이토록 상세한 고대 왕조의 계보는 어디에서 왔을까?독자 안내: 이 글에서 소개하는 환국·배달국의 왕명과 단군 47대 등은 『환단고기』가 내세우는 주장입니다. 검증된 왕조 계보나 고고학적 연대가 아닙니다. 인물과 문헌의 역사적 실재 여부는 각각 구분해 읽어 주세요.1. 이름만 들어도 오래된 책 같지만한 나라가 수천 년 동안 이어졌다고 말하는 것과, 그 나라를 다스린 왕 47명의 이름을 차례로 기록하는 일은 다르다. 전자는 먼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믿음일 수 있지만, 후자는 왕위 계승과 재위 기간, 전쟁과 제도를 구체적으로 주장하는 왕조사가 된다.『환단고기』를 읽을 때 마주하는 것은 바로 그런 상세함이..
역사공방 | 한국사 연대기 5편고려와 조선은 왜 기자를 역사 속 왕으로 받아들였을까?왕이었을까, 현인이었을까? 기원전 108년, 우거왕의 고조선이 한나라와의 전쟁 끝에 무너졌다. 그런데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오늘날에는 낯선 이름 하나가 등장한다. 기자(箕子)다. 오랫동안 고려와 조선의 역사책에는 기자가 중국 은나라에서 조선으로 왔다는 이야기가 실렸다. 조선왕조는 그를 기리는 제례까지 행했다. 오늘날에는 기자가 실제로 고조선의 왕조를 세웠다는 주장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과거 사람들은 왜 기자를 우리 역사에 포함했을까? 기자를 중국에서 온 지배자라기보다 도덕과 문명의 상징으로 여겼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번 편은 기자의 조선행이 사실이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
우거왕과 한나라의 전쟁, 그리고 왕검성의 마지막고조선은 한나라의 대군 앞에 단번에 무너졌을까? 기원전 109년, 한나라의 육군과 수군이 고조선을 공격했다. 그러나 첫 공격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육군은 고조선의 방어에 막혔고, 수군도 큰 피해를 입었다. 왕검성은 오랫동안 버텼다.그런데 기원전 108년 고조선의 왕조는 끝내 무너졌다. 무엇이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을까?지난 3편에서는 부왕·준왕과 위만의 집권을 살펴봤다. 이번 편에서는 위만의 손자로 전해지는 우거왕(右渠王)을 중심으로 『사기』 「조선열전」에 기록된 마지막 전쟁을 따라가 보자. 1. 한나라와 고조선은 처음부터 적이었을까?위만이 고조선의 왕이 된 뒤 한나라와 맺은 관계는 처음부터 전쟁을 향하지 않았다. 『사기』에는 위만이 한..
